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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호가 났기 때문이다 비록 학도의용대 입대가 좌절되었지만 자신. , 이 학교에서 혈서를 쓴 일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또 사촌 누나 정효례는 . 광주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과 결혼한 몸이었다 사촌 형 정길문은 일제강점. 기에 금융조합에서 일했고 정창연은 고창고보를 나와 광주에서 교사를 했, 다 정길문 정창연 정효례 정동수 남매의 맏이인 정맹문과 그의 부친 정진욱. · · · 은 동래정씨 집성촌인 월악리 지변마을에서 유력자 집안이었다. 이런 그의 집안이 전쟁 때 피해가 크지 않았던 이유는 정진욱 정맹문 부자가 · 마을에서 인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인심을 잃은 게 아니라 후덕. , 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렇기에 장남 정맹문의 여동생 정효례도 월야지서에 . 구금되었다가 석방될 수 있었다. 정맹문의 장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의 처가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 운당. 리 영촌마을인데 처남이 일제강점기에 광주도청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인공 , 시절 장인이 묘량분주소에 연행됐다 장인이 처형되기 직전 한 좌익 지도자. 가 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며 목숨을 살려주었다 사돈 집안과 똑같은 " " .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정화영도 수복 직전 광주로 돌아가 함평군의 부역. 자 검거를 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딸이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정진욱 정맹문 집안이 한국전쟁기에 완전히 화를 면한 것은 · 아니다. 년 월 일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소이탄이 초가에 떨어져 불이 붙었1950 12 7 .' ' 다 군인들이 고함을 질렀다 모두 집에서 나왓 소년 정근환 년생 은 . . " . " (1937 ) 군인들에게 이끌려 가족들과 함께 남산뫼로 올라갔다 함평군 월야면 월악. 리 월야리 개 마을 주민 약 명이 산등성이에 모여 앉았는데 그야말로 , 7 700 , 풍전등화였다. 그때 선무공작대장 윤인식이 중대장 권준옥 대위에게 선별 처형 할 것을 5 ' ' 건의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던 권 대위 중대장 도 세 미만 소년. ( ) 17 과 세 이상 장년 들을 살려 주기로 했다 군경 가족을 하산시킨 권 중대45 . 장은 기관총을 설치하고 집중사격 준비를 했다 정맹문의 남동생인 정길문. 년생 은 왜 죽이려는 겁니까 라고항의했다 그러자 권준옥 중대장은 (1919 ) " ?" .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길문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방 아쇠를 당겼다 또 월야국민학교를 나와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정맹문의 막. 냇동생 정동수 년생 도 죽임을 당했다(1928 ) . 이날 같은 마을 정병모 년생 와 정양모 정문모 등 한 집안에서 명이 (1932 ) , 7 몰살됐다 지변마을 주민을 포함 약 명이 제 사단 연대 대대 중대. 250 11 20 2 5 에 의해 불법적인 죽임을 당했다. 몇 차례의 집중 사격 후 중대장은 그때까지 살아있던 이들을 찾아냈다 확5 . 인 사살을 위해서였는데 그중 젊은 여성들을 함평군 해보면 문장리에 있던 , 중대 본부로 데려가려 했다 여성들이끌려가면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를 . - 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