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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조(李康祚) 1890.12.21.~1954.5.18. 대통령표창(2003) /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426
이강조 선생은 1890년 12월 21일 단장면 미촌리 426번지에서 부 이기희(李起禧) 모 이사춘(李舍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1916년 3월 16일 부 박준영(朴準永) 모 이석병(李錫丙)의 여식(女息)인 삼랑진읍 율곡리 566번지 출신 박병림(朴炳林)과 혼인하였다. 이강조 선생은 1919년 4월 4일 밀양군(密陽郡) 단장면(丹場面)에 있는 표충사(表忠寺) 승려들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3월 20일 통도사 승려 50여 명이 표충사로 건너와 단장면 승려들과 비밀회합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단장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각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마련하였다. 거사 당일 정오 무렵 주동 인물들의 '대한독립만세' 3창에 이어 군중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선생도 군중들과 함께 단장주재소(丹場駐在所)로 나아가서 주재소를 부수고 일제헌병 명화해차(名和海次)를 구타하는 등 주도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급파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 의거로 선생은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