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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유한바 없다 하리요. 기미년 3
1운동에 투신한 이후 만주로 망명
항일구국운동에 영일이 없다가
1929년 왜경에 피체될때까지
만몽황야에서 풍찬노숙 십유여
년 오직 조국광복에 심혈을 다하
였으니 허다한 행적 중 대한독
립단 간부로서 활약하다가 봉천
성흥경현 영릉가에서 당시 주
만일본총영사와 친일집단인 보민
회장 등 일행 삼십여명을 불과 5명의
결사대를 인솔하고 일격에 무찌
르니 천하를 놀라게한 장거는 우
리 독립전사를 더욱 빛내는 위훈
이 되었도다. 이같이 승화된 민
족정기에 원수의 사형이 언도되
었다가 무기의 언고를 치르는 동안
에도 숭고한 그 지조 추호도 변함
이 없었으니 가위 천읍지애할 열
절이라 하겟도다. 유집영어 17성
상 조국해방으로 일신의 자유를 얻
었으나 통일 없는 조국이 한스러워
옥고에 지치신 병구로써 광복동지
회 3.1동지회 등을 조직하여 조국
통일사업에 마지막 정열을 다하다
가 불행히 1965년 12월 29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이북에 영존
한 부인의 생사조차 막연한채 한
많은 일생을 마치었으니 위훈에
빛나는 국가공로훈장과 동포대
중의 극진한 사회장인들 어찌
지사의 읍울한 흉금을 활연케 하
였다 하리요. 다행히 영윤 삼육은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세창장
학회를 만들어 순국선열의 자
녀들을 보살피게 되었으니 존영
을 위로하는 참된 보은이요 빛나
는 충절을 영세에 전하는 길이 되리로다.
유방천추에 명명할진저
서기 1966년 5월 11일 요산 김정한 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