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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미우라 고로 공사는 일본정부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았고 다만 일본정부는 황비 시해에 참가한 80명의 일본인들에게 한국에서 떠나라고만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하며 일본정부는 자신의 무죄함을 세계 각국에 입증하려한 것입니다. 우리 황실에 대해 일본인들이 범한 이 행위는 문명의 관념은 조금도 없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가장 사나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1905년에 일본 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와 함께 그들의 군인들로 황궁을 포위하고, 한국정부의 총리 대신을 체포했으며, 다섯 개의 조항으로 된 조약에 서명하라고 한국 황제에게 강요하며 그들은 자기들이 서명 후 자기들이 옥새를 찍었습니다. 이 조약은 한국 황실에 신임장을 낸 모든 외국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우에 직면하여 한국 황제는 미국인 헐버트를 각국에 순회시켜 한국정부가 이와 같은 조약을 일본과 체결할 의사가 추호도 없었음을 설명하게 했고, 황제는 또 비밀리에 헤이그 평화회의에 사람을 보내 일본이 한국에서 비열하고 야만적이며 배신적인 태도로 행동하는 증거를 각국 외교사절에게 제시하게 햇습니다. 이 조약을 근거로 일본은 1907년에 지난번에 저지른 죄악을 뉘우치지도 않고 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키고, 한국 군대를 해산시켰으며, 한국의 관리들을 자신의 권력 밑에 종속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압제(壓制)에 시달린 한국인들은 의병을 일으켜 게릴라전을 시작하여 피를 흘렸습니다. 이리하여 한국에는 평온이 없습니다. 일본인들의 배신과 잔인성에 분노한 한국인들은 통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비열한 가면을 뒤집어 쓴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교육을 보급시키고 복리를 도모하겠노라고 모든 사람에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한국학생들이 국가를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체육교육을 금햇으며, 한국의 역사책을 불살라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일본군은 한국의 국민교육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벌을 받고, 진실을 글로 발표하는 사람은 법정에 출두해야 하며, 공포된 문건들에 항의하는 사람이나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역하는 사람은 체포당합니다. 한국인들은 글을 쓸 자유나 서로 토론하는 자유가 없습니다. 만일 몇 사람이 모이면 즉시 체포당합니다. 만일 몇 사람이 같이 앉아 있으면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