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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함성이 나자 공은 결사보국을 다짐하며 이 고장 양성 원곡의 3.1운동 제1선봉에 스셨다. 시는 금년 4월 1일 양성면 소재지에 운집한 수천 군중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하늘 높이 외치시다. 급기야 양성면사무소 경찰서 주재소 우편소 등 일제 식민 통치기관을 산산파괴하고 충화하며 일본인 등을 완전 축출하였으니 이는 민족적 설분이요. 독립투사의 개가였다. 연이 국권없는 민족이요. 적손공권 엇지하랴. 선생은 왜적에게 피체되여 형언할 수 없는 비인도적 고문 끝에 경성 지방법원 일본인 판사로부터 징역 3년의 형을 선고받으시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장장 3개 성상의 영어의 생활을 마치시니 이는 일가 전복은 물론이요 민족의 비애가 않이리요. 출옥 후에도 일제 요시찰인의 눈을 피하며 종신토록 애국사상을 고취 앙양하시다가 서기 1972년 12월 23일 서거하시며 배위 경주이씨 봉순 여사는 서기 1900년 7월 8일생으로 서기 1958년 9월 1일 졸하시여 이곳 만년유택에 합봉영면하시도다. 오늘의 번영된 조국에서 엇지 그 공훈을 잊으랴. 근자 3.1운동 독립유공자로 발탁되시여 서기 1990년 12월 26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으시며 서기 1991년도에는 국가보훈처의 애국지사 묘소 단장지원으로 이 비를 세우도다. 서기 1991년 신미 12월 일 경주후인 이종두 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