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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민주의거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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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도사 노형래 순교 기념비
복음 전도사 노형래는 1923년 7월 27일에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한성리 한성성결교회 개척자 노승우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심이 투철한 노형래는 일제 강점기인 10살 때 삽교 보통학교에서 강요했던 신사참배를 신앙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선생님께 매를 맞고 강제로 퇴학을 당했다.
전화위복으로 노형래는 일제의 교육 대신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배양학원에서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신학문을 배워 훌륭한 신앙인 애국청년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는 해방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한성성결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섬기면서 교역자가 없는 지역교회들을 순회하며 복음 전도사로 열심히 사역했다.
한편 노형래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대립이 극심하여 혼란이 가중 될 때에, 성경을 기본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으로, 대한민국 건국 운동의 서천지역 대표로 활동했다. 건국운동과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전념하고 있을 때,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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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친지들은 잠시 피하라고 권했으나, 노형래는 교회를 두고 혼자 피할 순 없다고 교회를 지키었다. 북한 공산군이 서천을 점령하고 한성리 마동에 주둔하여 반공 인사들과 기독교인들을 섹츨하고 박해할때, 그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북한군이 점령한 서천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그는 극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취조관에게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 권을을 얻습니다"라고 끝까지 복음을 전했다.
노형래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중요 인물로 분리되어, 북한 공산군에 점령하고 있는 대정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그는 온갖 고문을 받으며 고초를 겪다가, 1950년 9월 26일 대전 형무소에서 북한 공산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순교자 노형래는 대전시 보문산 사정공원 애국지사 묘에 잠들어 계신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