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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조선의용대의 창립과 중국 화북지역에서의 활동 31 았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팔로군 근거지에 진 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조율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화북 파견 대원들이 태항산지구에 안착한 사실로 미 루어, 중간 단계에서 중공당 측의 조선의용대원들을 태항산지구에 진입시키기 위한 공작이 일정 부분 작 용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의 활동과 특징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1941년 7월 7일 출범하여 1942년 7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개편되기까지 1년간 태항산 근거지를 기반으로 하북성(河北省) 남 부와 중부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조선의용대 화북지 대(이하 화북지대)는 무장선전을 핵심 과업으로 삼 았다. 이 활동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제1 차는 간부훈련반 운영과 병행하여 1941년 9월부터 10월까지 전개되었고, 제2차는 1941년 11월 초부 터 1942년 3월 말까지 약 5개월간 지속되었다. 대원 들은 공작구역을 적후근거지, 유격구, 일본군 점령 구역으로 구분하고 각 공간의 성격에 따라 차별화된 임무를 수행하였다. 먼저 적후근거지에서는 팔로군 장병과 중국 민 중 을 대상으로 친일 괴뢰정부의 정책과 내부 상황, 일 본군 내 한인사병 현황, 그리고 조선의용대 활동의 의의를 집중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러한 선전활동은 좌담회, 군중대회, 연환회(聯歡會) 개최와 더불어 전 단·표어 배포 등의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좌담회에 는 지방유지, 현(縣)정부 간부, 구망(救亡)단체(항일 단체) 간부, 교원 등이 참여하였고, 군중대회는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연환회는 중국 민중과 팔로군 장병, 그리고 조선의용대 대원 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로서 군민합작을 촉진하였다. 아울러 화북지대는 일제의 통제력이 강한 일본군 점령구역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 지역에서의 공작은 팔로군 및 친(親) 중공당 민병과 연계하여 봉 쇄선 돌파, 토치카 및 도로 파괴, 전선 절단 등 ‘파괴 공작’(破擊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 원들은 직접 전투에 가담하거나 중국군을 엄호하는 동시에, 현지 민중을 동원해 부상병을 수송하는 등 다양한 지원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어 표어 작성, 전단 살포 등 적군 대상 선전도 병행되 중국 산서성 좌권현(左權縣) 상무촌(上武村) 조선의용대 주둔지 터  진입로 상무촌 조선의용대 주둔지 터 표지판과 표지석(이상 2017년 촬영 ,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