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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평안도, 3 · 1운동을 이끌다 31 평안도지역은 민족대표의 3분의 1인  11명을 배출하여 전국에서 가장 많 은 민족대표를 배출한 곳이었고, 이 들 민족대표를 중심으로 타지역보다  가장 먼저 3 · 1운동을 일으킨 지역이 었다. 또한 평안도지역의 3 · 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확산되었다는 점 에서 전국의 3 · 1운동을 견인한 측면 이 있었다. 그리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제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다 는 점에서 그 상징성 역시 대단히 컸 다. 이처럼 평안도지역은 3 · 1운동사 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대단히  큰 곳이다. 그럼에도 아직 그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3 · 1운동’은 일제강점기 민족 최대의 독립 운동으로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3 · 1운동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많은 진전이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도 적지 않은데,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평안도지역의 3 · 1운 동도 그 중 하나이다. 사실 평안도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민족대표 를 배출한 고장인 동시에 가장 빨리 운동이 일어난 곳이고, 더 나아가 가장 빨리 확산된 가운데 가장 공세적인 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점에 서 3 · 1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대단히 큰 곳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3 · 1운동 105주년을 맞이하여 그간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 았던 평안도지역 3 · 1운동의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 민족대표의 3분의 1을 배출하다 평안도는 한반도의 최서북 단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중 국과의 교통로로 발달했던 곳이다. 현재는 북한(조선민 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안남 도·평안북도·자강도·량강도· 평양직할시·남포특별시를 포 괄하며, 3 · 1운동 당시에는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로 구성 되어 있었다. 평안도지역의 3 · 1운동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민족대표 33인 중 3분 의 1에 해당하는 11인이 평 안도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다. 이는 3 · 1운동사에서 차 지하는 평안도지역의 위상을 평안도지역(녹색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