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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창고개 전적지 원창고개는 춘천에서 홍천을 연결하는 5번도로의 애로지역으로서 해발600m(현재는 많이 낮아졌음)의 고개마루에 오르면 춘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고개로 오르는 길은 구비구비 휘감아 돌기때문에 방어하기에 대단히 유리한 지형이었다. 1950년 6월 25일 기습남침한 적과 맞서 3일간이나 춘천을 방어했던 6사단 7연대는 전차를 앞세우고 계속 공격해 오는 적에게 밀려 6월 27일 저녁 이곳 원창고개로 철수하여 다시한번 적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소양강 남단 지내리의 136고지에서 방어하던 7연대 2대대는 6월 27일 오후에 철수하여 저녁때쯤 원창고개에 도착,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봉의산및 후평동 일대에서 방어하던 7연대 1대대는 6월 27일 17:00시경 철수하여 원창고개 동쪽 2Km지점인 수리봉 삼림속에서 비를 맞으며 밤을 새웠고, 6월 28일 아침 원창고개 서쪽 2Km지점인 금병산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춘천을 점령한 적은6월 28일 08:00시경부터 원창고개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먼저 약 1개대대의 적이 7연대 2대대 정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곡, 2대대는 적이 약 200m까지 접근했을때 일제사겨을 퍼부어 격퇴시켰다. 패퇴한 적은 10:00시경 7연대 1대대 정면(금병산)으로 약 2개중대가 양공을 실시하면서 11:00시경에는 7연대 2대대 정면(원창고개)으로 약 1개 대대가 백기를 들고 접근해왔다. 2대대 장병들은 적이 투항해 오는 것을 착각하고 사격을 중지한후 진지 밖으로 뛰어나가 빨리 오라고 손짓하며 환성을 질렀다. 적이 아군진지 앞에 도착하여 반갑게 맞이하려는때 적은 어깨뒤에 숨겼던 따발총을 들고 난사함으로서 7연대 2대대 방어진지는 삽시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피아가 뒤엉킨 육박전은 총검과 주먹질의 난투장으로 변했고, 2대대장도 적병과 맞붙어 싸우며 뒹굴때 연락병이 적병을 사살하여 구출하였다. 이 무렵 금병산에 배치된 7연대 1대대는 공격해오는 적을 박격포 지원사격하에 2시간 정도 격전을 벌여 격퇴하였고, 7연대 2대대(원창고개)쪽으로 증원되는 적의 후속부대를 측방사격으로 차단하였다. 이리하여 육박전을 전개하던 2대대는 간신히 적을 저지할 수 있었으나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 12:00시가 지나면서 부터 각개 분산하여 모래재로 철수하였다. 7연대 1대대도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방어진지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대대의 철수로 인해 후방이 차단될 위험이 있어 15:00시경부터 모래재로 철수를 개시하였다. 이로서 험준한 원창고개를 이용 적의 공격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했던 7연대는 적의 기만전술에 속아 불과 1일만에 원창고개가 피탈되는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 이처럼 원창고객는 적이 백기를 들고 야비하게 기만전술을 폈던 장소이며, 전투경험이 부족했던 아군은 적의 속임수에 넘어갔던 뼈아픈 자리이다. 지금도 적의 술책은 변함이 없는데 또다시 속아 넘어가서야 되겠는가. 역사의 교훈을 가슴깊이 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