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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 기미독립의거 표지석
기미년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의거가 전국으로 퍼져나갈 때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독립선언서를 옷깃에 숨겨 고향으로 돌아온 김종훤은 4월 11일 김승태, 이강석, 최현호 등 동지와 회합을 갖고 4월 12일에 군중을 동원하여 무계리시장에서 거사하기로 결의하였다. 주동자들이 태극기 제조와 인원 동운으로 4월 12일 정오경 무계리시장에 모인 3천여 명의 군중이 김승태 등의 선창에 따라 독립만세를 제창하며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우렁차게 행진하였다. 여기에 일본 군경이 총을 쏘면서 위협하자 격분한 군중은 무계리 헌병주재소로 몰려갔는데, 이 충돌과정에서 김선오, 손명조, 김용이 세 분은 일본군의 흉탄에 현장에서 순국하셨고, 동지가 쓰러진 광경을 본 군중은 헌병주재소를 투석과 몽둥이로 파괴하였다. 이후 증파된 일군 때문에 군중은 해산되고 주동 인물은 검거되어 투옥되었다. 이때 형을 받은 주동 인물과 순국자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