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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쟁 전에도 숙부의 좌익 전력 때문에 신광지서에 차례 연행되어 3~4 고문을 당해야 했다 노기현은 한 일도 없이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보도연맹. 에 가입했다 젊고 똑똑하다 는 이유로 함평군 보도연맹 총무를 맡았다 전. ' ' . 쟁 전 수시로 소집된 모임에서 제식훈련과 반공교육을 받았다 수백 명이 가. 입된 함평군 국민보도연맹 총무를 맡다 보니 경찰과도 자연스레 안면이 트' ' 였다. 신광지서로 가면서 노기현은 전쟁이 났다더니 보도연맹원들을 피난시켜 줄' , 란갑네 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지서 유치장에서 밤을 보낸 ' . . 그는 다음날 함평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경찰서 유치장도 관내 보도연맹원들. 로 만원이었다 함평여중 강당으로 다시 옮겨졌다. . 강당에서 보낸 일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가족들이 매일 나르는 밥이야 11 . 그렇다 쳐도 한여름 비좁은 강당에 명이 구금되어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222 다 대소변은 드럼통을 반을 잘라 해결했다 진동하는 악취에 숨이 막혀 죽. . 을 지경이었다 이곳이 너무 비좁아서 더 안락한 수용소로 여러분을 모시기 . " 위해서 보내드리니 순순히 응해주십시오 함평경찰서 경찰 간부는 웃음을 ." 띠고 말했다. 출발 전 인원 점검이 있었다 하나 둘 셋 이백 스물 둘 노기현이 제일 . " , , .... !" 마지막으로 번을 외쳤다 인원 점검이 끝나자 경찰들은 새끼줄로 보도연222 . 맹원들을 뒷결박짓고 신발을 벗겼다 함평읍 소재지에서 술도가를 하는 이를 . 포함한 지역 유지 명이 풀려나고 나머지 명이 트럭 대에 분승해 함3 219 12 평군 나산면 넙태로 이송되었다. 식 소총을 휴대한 경찰들이 트럭 네 귀퉁이에 있었기에 보도연맹원들은 38 숨 한번 크게 쉬지도 못했다 보도연맹원들은 명씩 묶였는데 경찰 명이 . 3 , 3 한 명씩 정조준해서 총질을 했다 대한민국 만세 를 외친 노기현은 총소리. " " 와 함께 기절했다 총알 한 방이 귓밥을 스치고 다른 한 방은 쇄골을 관통했. 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명이 죽은 그날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는 노기. . 219 현 정만우 김정수 명이었다 년 월 일 뙤약볕에서 벌어진 야만의 , , 3 . 1950 7 23 학살극이었다. 만석꾼 집안의 파산 신안 앞바다에서 물고기 밥이 된 사람 중에는 만석꾼의 자제가 있었다 바로 함. 평군 월야면 계림리 금치마을에 사는 안용제 당시 세 였다 안용제는 해방 ( 33 ) . - 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