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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은(尹輔殷) 1898.3.22.~1945.7.18. 대통령표창(2002) / 밀양시 내이동 900
윤보은 선생은 1898년 3월 22일 내이동 190번지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3월 13일 밀양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이 날의 만세운동으로 검거되어 기소될 당시 선생의 나이는 22세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밀양 장날 만세운동은 윤세주.윤치형 등이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에 참례하였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와 이 사실을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에게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윤보은 선생은 3월 12일 밤 윤세주.박만수.정동찬 등과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의논하고 윤세주 집을 거점으로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3월 13일 밀양 읍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밀양면사무소와 부북면사무소 등지에서 등사판을 몰래 가져와 아북산에서 밤을 새워 수백 매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 선생을 비롯한 주동자 등은 윤세주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장터에는 수천의 군중이 운집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밀양 거리는 온통 만세소리로 뒤덮였고, 부산에서 출동한 일본헌병과 수비대는 무자비하게 주모자를 체포하였다. 결국 군경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시위대열은 해산되고 선생을 비롯한 주동자는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선생은 이 일로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