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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와서보니 비문에는 임수명(林秀蓂)으로 애국지사 임수명(任壽命)지사와 한자도 다르고,비문을 읽어보니 임진왜란시 공신이었다.
임수명의 이름으로 두 분이 계신다. 신팔균애의 부인이신 임수명(任壽命)지사와 임병찬의병장의 손자이신 임수명(林守明)지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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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명(任壽命)은 충북 진천(鎭川) 사람이다. 1912년 서울 모(某)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환자로 위장하고 입원하고 있던 신팔균(申八均 ; 통의부군사위원장겸 사령관)과 알게되어 1914년 결혼하였다. 그후 북경으로 망명한 부군의 비밀문서 연락 등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1921년 밀명을 띠고 입국한 부군을 따라 만주로 가서 계속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1924년 8월 1일(음) 신팔균이 통의부(統義府)사령관 소재지를 습격하는 중국 마적과 전투 중 전사하자, 귀국하여 서울 종로구 사직동(鐘路區社稷洞) 자택에서 딸과 함께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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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명(林守明)은 전북 정읍(井邑) 사람이다. 조부 임병찬(林秉瓚)이 1913년 9월 서울에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결성,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하던 중 붙잡혀 1914년 거문도(巨文道 : 전남 여주군 삼산면)로 유배(流配)되자 조부를 수행하여 1916년 임병찬이 객사순국(客死殉國)할 때 까지, 2년간에 걸쳐 봉양(奉養)하였다. 1919년 8월 전 협(全協)·이일영(李一榮)·윤용주(尹龍周) 등이 서울에서 비밀결사 조선독립대동단을 조직할 때 부친 임응철(林應喆)('90년, 애족장 추서)과 함께 입단하였다. 그는 동단에서 전라도 익산군(益山郡) 이사(理事)로 임명되어 동지규합(同志糾合)과 군자금모집을 담당, 임병대(林炳大)·김흥순(金興順)·이병호(李炳祜) 등에게 대동단 입단을 권유하여 가입케하고 김흥순으로부터 군자금으로 60원(圓)을, 이병호로부터 70원을 받아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부친 임응철(林應喆)을 통하여 대동단본부원 윤용주에게 납부케 하였으며, 김흥순을 전주군이사(全州郡理事)로 발령케 하는 등 활동하다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0년 2월 2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검사의 공소(控訴)로 1920년 4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어 징역 1년에 3년간 집행유예를 받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