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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십삼도의군 의암 류인석 도총재 약전 의암 류인석(毅菴 柳麟錫) 선생은 1842년 1월 27일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류중곤(柳重坤)과 고령 신(申)씨의 차남으로 태어나 조선후기 화서학파의 위정척사사상을 계승하면서 성재 류중교의 교시로 강회와 향음례를 실시한 대 성리학자이고, 강론으로 구구인재를 길러낸 교육자이며, 척사사상을 실천에 옮긴 의병대장으로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기지 개척에 주력한 독립운동의 지도자요 위국헌신한 애국지사이다. 1896년 2월 7일 원주안창의병을 중심으로 영월에서 기의하여 호좌의진창의대장에 올라 전국에 격문을 보내는 동시에 제천과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친일관찰사를 처단하는 등 을미의병항쟁을 주도하면서 의기를 떨쳤으나, 일본군과 관군의 반격으로 퇴진하다가 동년 8월 24일 국경지 초산에서 승전한 국내항일의병전을 끝으로 중국 서간도에 망명하여 국내를 넘나들면서 강회활동과 향약운동전개 등 구국대의를 주창하였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13도의군(十三道義軍) 설립추진과정에서 「의병규칙」을 작성하고, 1909년 「관일약」과 「의무유통」을 제정하여 항일의병활동을 제고하던 중, 안중근(安重根) 의사에게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저격하도록 격려함으로써 한민족의 기개를 세상에 떨치게 하였다. 1910년 6월 21일 연해주 재피거우에서 13도의군 도총재로 추대되어 등단한 류인석 의병대장은 본토 수복을 도모하였으나 일제의 한일병탄으로 국권이 침탈당하자, 동년 8월 23일 성명회(聲明會)를 결성하고 한국국민의회(성명회) 회장 류인석의 명의로 국내외에 '선언서'를 선포하여 한민족의 독립결의를 천명하는 동시에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등 국권회복에 진력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1912년 학문과 사상을 담은 「우주문답」을 저술하고 친인척과 사우들이 망명한 서간도로 이동하여 조국광복을 모색 염원하였으나 끝내 1915년 음 1월 29일 중국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망국의 한을 품은 채 74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1917년 문인들에 의하여 「의암집」이 간행되었고 1935년 고향인 가정리의 현 묘역으로 반장되었으며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서기 2015년 6월 1일 강원도.춘천시.춘천문화원.의암류인석순국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