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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앞바다에 수장된 만석꾼의 손자 한국전쟁기 전남 함평군 보도연맹원 학살 유족 안중길의 이야기 22.07.08 15:23l최종 업데이트 22.07.08 21:38l박만순(us2248) 뿌연 먼지를 날리며 목포형무소 정문을 통과한 트럭은 운동장 한가운GMC 데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흰 옷을 입은 한 떼의 무리들은 사방을 두리번거. 리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극심한 공포를 경험했기에 . 감히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 이들은 누구랑께 함평 사람인갑소 어제부터 들이닥친 민간인들을 " ?" " . " 본 목포형무소 재소자들이 소곤거렸다 함평 사람 이라고 한 이는 본인이 함. ' ' 평군 출신이었다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본 것이다 아따메 여가 이. . " . 미 만원인데 얼마나 더 때려 부으려는겨 명을 수용하는 형무소에 , ?" 1000 명이나 수용되었는데 이틀간 민간인들이 계속 추가로 들어왔다 1400 , . 신안 앞바다에서 물고기 밥 이 되어 ' ' ▲신안군 비금면 앞바다의 추모비 함평군 보도연맹원 차 학살자 박만순( 1 ). ⓒ 어제 들어온 이들은 목포 무안 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이었고 년 월 , , 1950 7 일 입감된 이들은 함평군 보도연맹원들이었다 모두 목포형무소 관할 지 13 . 역이었다 해방 이후 전국의 형무소는 수형 시설과 재소자 인권 처우가 엉망.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전쟁 발발 후 보도연맹원까지 입감되니 형무소 . , 상황은 최악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을 구금할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 감방은 이미 만원이어서 목포 무안 함평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은 형무소 , , 내 공장에 구금됐다. 함평군 보도연맹원들은 형무소 벽돌공장에 구금된 지 한나절만인 밤에 다시 트럭에 태워졌다 목포 무안 지역 보도연맹원들도 함께였다 트럭이 멈춰선 . , . 곳은 목포 항구였다 바다 위에는 전라남도경찰국 경비선 금강호가 떠있었다. ' ' . 총을 든 경찰들이 사방을 경계한 상황에서 흰옷 입은 무리들이 승선했다. - 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