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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된 독립운동가 전창신(全昌信) 경감(1901~1985)
1946년 5월 경찰당국에서 여경찰을 모집할 때 지원 조건은 20세 이상 35세 이하의 나이, 고등학교 졸업 수준의 학력을 요구하였다. 당시 15세 이상 여성 인구 중 중학교 재학 이상 학력을 가진 여성이 2%에 불과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 여경찰의 학력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지식인이자 사회지도층 여성들이 다시 경찰에 입문하는 배경이 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도 있었다.
그중 인천여자경찰서 2대 서장인 전창신(1901~1985)은 1919년 3월 함흥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8개월간 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로, 광복 후 1946년 조국치안의 선봉에 서기 위해 경찰이 되었다.
1950년 11월 인천여자경찰서장으로 부임하여 1951년 10월 퇴임할 때까지 여성피해자 및 피난민 등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힘썼으며, 특히 경찰애육원을 설치하여 전쟁고아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 보호에 주력하였다.
퇴임 후 1981~1983년까지 3.1운동 여성동지회 8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85년 별세하였다. 1992년 정부는 전창신 경감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한국여자경찰육십년사, 대한민국여경재향경우회, 도서출판에스프리, 작은 불꽃, 전창신, 창조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