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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방우(尹芳友) 1896.3.2.~1927.2.13. 대통령표창(2002) / 밀양시 내이동 991 윤방우 선생은 1896년 3월 2일 내이동 991번지에서 부 윤치완(尹致完) 모 김상남(金尙南)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김무갑(金武甲)가 하악이(河岳伊)의 3녀 김양이(金襄伊)와 혼인하였고, 장남 윤정수(尹丁洙, 1915년 생)와 차남 윤영순(尹永淳, 1919년 생)등 두 아들을 두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러일전쟁 후 제방을 쌓는 등 개간 사업을 하며 토지를 늘려가던 일본인들과 조선 농민 사이의 갈등이 커져갈 때 1919년 3월 13일 밀양 장날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은 윤세주.윤치형 등이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와 이 사실을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에게 전하면서 추진되었다. 거사 당일, 선생을 비롯한 주동자 등은 윤세주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그리고 장터에는 수천의 군중이 운집하여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선생은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부산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선생은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