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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택(鄭元澤) 1890.09.27~1971.11.28 / 임시정부 / 건국훈장 애국장 1910년에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상해에서 신규식 등이 조직한 동제사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8년에는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자금을 간도 노령에서 인수하여 전달하였으며 1919년에는 대한독립 의군부의 조직에 참여하여 서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1919년 4월에는 의군부의 기밀사로 상해에 출장하여 이동녕등과 함께 길림의 상황을 보고하고 국내에서 새로운 청년들에게 폭탄제조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19년 4월에 개최된 임시정부 임시 의정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원회의에 참석하였다. 의정원 의원 김덕진과 함께 국내로 밀파하여 귀국 도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안병구(安秉九) 1922.10.28~2007.04.26 / 학생운동 / 건국포장 1940년 9월 서울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재학 중 손용우 등과 함께 동교생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종호 등이 동월 28일 사직공원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 입간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한 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되어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2005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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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응(權泰應) 1918.04.20~1951.03.28 / 학생운동 / 대통령 표창 1935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최인형.염흥섭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UTR구락부에 가입하여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했다. UTR구락부는 원래 급우생들의 친목모임으로 출발했으나, 학교측의 민족차별과 노예교육에 반발하면서 항일학생운동단체로 발전하였다. 1937년 3월 4일 동교 졸업식 당일 친일적 발언을 일삼던 친일학생들을 구타하여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와세다대학에 재학하던 중 쥬오대학에 다니던 UTR구락부 동지 염홍섭 등과 함께 공산주의를 선전 계몽하고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1937년 9월 재도쿄 경성고보 제33회 동창생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사회주의 학습반을 조직하였다. 그는 이 모임을 중심으로 1939년 5월까지 조국의 독립 및 신사회의 실현방안을 논의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정부에서는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