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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구 선생은, 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동지들을 규합하여 1914년 5월 서간도 합니하(西間島哈泥河)에서 김창식(金昌植) 강봉주(姜鳳周) 윤이병(尹履炳) 등과 광제회(光濟會)를 조직하고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미국 등지에서 발간되는 신한민보(新韓民報)를 국내에 들여와 발행하다가 1915년 초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7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1920년에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피선되어 1922년 4월까지 의정원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3월 21일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임시선전원에 임명되어 호북성(湖北省) 등지에 파견되어 동년 8월까지 선전활동을 하였다. 1922년 9월에는 상해에서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 이사회가 개최되었는데 그는 교제과(交際科) 간사에 선출되어 한중(韓中) 양국의 친선과 공동 항일운동을 위해서 진력하였다. 1922년부터는 중국군에 입대하여 무력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