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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78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에 서 유신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81년 졸업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 다. ’82년, 노동자의 삶이 펼쳐지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82년 보성금속 , K.C 전기에 근무하면서 진정한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살고자 자기와의 치열한 싸 움을 했으며, 힘겨운 현장생활의 와중에서도 청주직업훈련원 전기과를 야간으로 이수하였다. 그로부터 죽음의 병마와 싸우기까지 동지는 오직 노동자의 총체적 해방을 향 한 투쟁의 한 길을 걸어왔다. 영등포 산업선교회 교육간사, 영등포 기계공단노조 사무국장, 대한중전기 분회장을 거치는 동안 동지는 한번도 노동현장에서 벗어 나지 않았으며, 늘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 있었다. ’90년부터 2년여 동안 맡았던 서노협 선봉대장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부천 세종병원에서 역시 노동조합운동 에 헌신하고 있는 부인 신윤복 동지는 몸을 돌보지 않고 이랜드 투쟁에 매달리던 동지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동지는 특히 노조운동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역인 섬유와 유통, 영세 사업장의 조직화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무국장을 지낸 영등포 기 계공단노조는 공단 내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로 구성된 지역노조였다. 한편 서노협 전임을 비롯해 직업적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는 동안 동지는 극심 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세 명의 가족을 거느린 동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임 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비가 전부였다. 그나마 민주노총이 출범한 뒤 부 족하나마 비로소 지급되기 시작한‘첫 월급’을 그는 병상에서 받았다. 간암 중기의 하늘이 무너지는 선고가 내려지기 전날 밤에도 동지는 민주노총 의 핵심적 과제 중의 하나이면서 동지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였던 노동자 정치세 력화 방안을 새벽 4시까지 정리했다. 동지가 민주노총의 정책기획국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꿈에도 염원하는 민주노총 건설이 실현되고, 자신의 땀이 밴 그 조직이 이제 막 새롭게 활동을 펼치려던 참이 었던 ’96년 5월 2일, 그의 병세가 악화되어 여러 번의 입원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지는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벽2시25분경, 아직채못피운서른아홉살의 짧은생애로운명하였다. 유구영(당시39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57년 출생 1978년 청주고등학교 졸업 1981년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한국신학대학원 입학 1988년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1990년 대한 중전기 분회장 1993년 서울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정책실장 1995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 정책부국장 1996년 5월 2일 새벽 2시 25분경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암으로 운명 끝내살리라 |59| |5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