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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 최선생 순의비(西扉 崔先生 殉義碑)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43-1-6호 / 소재지 :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684-3 서비(西扉) 최우순(崔宇淳:1832~1911) 공(公)은 7세 때에 이미 한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경탄케 할 정도로 당대의 지고한 유학자로서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제에 의해 체결되자 공은 일본이 있는 동쪽이 싫어 호(號) 청사(晴沙)를 서비(西扉:서쪽 사립문)라 고치시고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義兵)을 일으키는 등 신명을 바쳐 애국충정을 불태운 분이시다. 한일합방(韓日合邦)을 강행한 일제는 적국의 명망있는 유림에게 일왕의 소위 은사금(恩賜金)이라는 것을 주어 민심을 무마하는 술책을 썼다. 공에게도 은사금을 받으라고 수차례 강요하다가 대의와 명분에 이긋나는 일이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자 일제는 헌병을 파견하여 충칼로서 강제로 연행코자 하므로 공은 날이 밝으면 가지 하시며 그날 밤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절하신 순국의사(殉國義士)이시다. 이날이 바로 1911년 신해년(辛亥年) 3월 19일 향년 80세이셨다. 서비 최선생의 장한 순절(殉節) 소문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의 유림과 지사들이 공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기리기 위해 도곡산록(道谷山麓)에 사당을 건립하고 서비정(西扉亭)이라 이름하여 해마다 향사(享祀)를 모시어 공의 의절(義節)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전국의 유림과 유지, 많은 고성 군민이 서비 최선생의 숭의회(崇義會)를 조직하여 공의 순열의 정신과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학동(鶴洞)마을 입구에 이 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