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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弱冠)의 나이에 조국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활동한 사건으로 예비검속을 당하게 되었으며, 1945년 일본 헌병대 유치장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았고, 해방 후 지방 청년들을 규합하여 경찰서 주재소를 접수하고 보안대를 조직하여 혼란했던 해방공간의 지방치안에 진력하게 된다. 대한 청년단 거제연합회 단장으로 한국전쟁 때에는 자율민방위대를 조직하여 견내량 방어작전을 주도했고, 후퇴한 국군 1,000여명을 1주일간 혼자서 응급처치하기도 했다.
이후 육군 군의관으로 징집되어 활동하다가 휴전이 되자 육군 중위로 제대하여 제대장병 보도회 거제군 연합회 제3대 회장으로 하청면내 6.25 참전용사 합동묘지 조성과 충혼탑 건립에 앞장섰다.
하청 초등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퇴락한 학교 교사 신축을 위해 노력한 공이 크며, 특히 5.16 이후 농촌지도소 및 보건지소 개소에도 크게 공헌했다. 또한 두번에 걸친 거제 보건소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유행했던 결핵퇴치에 심혈을 기울렸고, 수질개선만이 건강의 지름길임을 역설하며 각 마을간이 상수도 50여개소를 설치하는 등 멸사봉공하는 공직자상의 귀감을 실천하셨 다. 이후 모든 공직을 떠나 타계하실 때까지 오로지 향촌인을 위해 의료활동에만 전념하시며 보건복지 향상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금년은 공이 돌아가신지 30년이 되는 해로 늦게나마 생전의 지기 후학들이 뜻을 모아 공의 자취를 간추리고 그 드리우신 유덕을 길이 전하고자 성력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2009년 12월 일
하청면지편찬위원회 위원장 활석(活石) 김백훈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