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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군은 1974년 1월 22일 아버지 정태희 씨와 함께 경상북도 상주군(현 상주시) 화서면 소곡리의 집에서 약 12km 떨어진 충청남도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에 있는 큰집으로 설을 지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큰집으로 가려면 보은군 마로면에 있는 험준한 고갯길인 마루목재를 건너야 했는데 당시 이 고갯길에는 이틀 전부터 내린 눈이 33cm 가량 쌓여 있었고, 기온도 영하 20℃까지 내려갔다 한다. 그 다음날 사람들은 고갯길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다. 부자가 동사한 상태로 땅에 움츠리고 누워 있는데 아버지의 몸에는 아이의 외투가 덮여 있었고, 아이는 아버지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술기운이 있었던 아버지가 눈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아이가 옷을 덮어 주고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다가 지쳐 잠들어 결국 동사하고 말았다. 이 눈물겨운 이야기는 당시 여러 신문기사에 실려 전국으로 알려졌고, 후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렸으며,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정재수군이 목숨을 잃은 고갯길인 마루목재에 묘가 만들어졌고, 1974년 묘 옆으로 정재수효행비가 세워졌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정재수군의 효행이 점점 잊혀져가자 지역의 뜻있는 이들이 효자정재수기념사업회를 구성하고, 1993년 3월 폐교가 된 정재수군의 모교에 기념관을 마련하게 되었다. 출처 : 정재수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