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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기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신생활」, 1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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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와 「봄비」는 변영롱게도 기념비적이지만 우리 시사(詩史)에서도 기념비적이다 - 김윤식(서울 정음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