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page


296page

정시항(鄭時恒) 1867~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 정봉준.김학선 의진에 가담하여 충청도와 강원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충청도 음성 금광에서 광부로 일하던 정시항은 이같은 시기인 1907년 7월 정봉준 의진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정봉준은 1905년 11월 [을사륵약] 체결 직후 의병을 일으킨 뒤, 1907년 8월부터 경북 문경.청풍, 충청도 괴산.충주, 강원도 원주, 경기도 여주.지평 등지를 무대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의병장이었다. 이후 그는 정봉준 의병장을 따라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여 이곳에서 정낙인의 의진과 합진하여 활동하다가 같은 해 12월 상업산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그리고 그는 1908년 1월 다시 김학선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같은 해 음력 5월 초 충주 노은리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8년 7월 31일 평리원에서 유형 1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96page

주광식(朱光植) 1874.09.30~1957.03.05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 주광식은 이강년이 재거의 할 때 참여하여 병력과 물자를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충북.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07년 9월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강원도 원주에서 민긍호 의진과 연합하여 적군과 교전하였고, 9월말 90여 명의 병력과 함께 이강년 의진에 합류하여 후군장을 맡아 강원도 인제.홍천.양양.고성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동년 12월 300여 명의 군사들을 지휘하며 강원도 영월군 수인면 구림동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펼쳤고, 1908년 2월에서 3월 사이 인제군 북면 설악산의 오세암을 근거지로 인근지여게서 강력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용창(權用昌) 1886.04.08~1050.12.17 / 의병 / 건국훈장 애족장 1906년 7월 이강년이 충북 단양에서 거의한 뒤 제천으로 진군, 사방에 격문을 보내고 의병을 소모할 때 그 휘하에 들어가 좌종사가 되어 단양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 뒤 그는 이강년 의병대장이 1908년 6월 전상으로 청풍 작성에서 피체될 때까지 함께 종군하였으나, 곧이어 일경에 피체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