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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돈상(柳敦相) / 만주 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
춘천의병장 외당 유홍석의 손자이다. 경술국치 이후 1911년경 조부 유홍석, 재종조, 의암, 유인석, 부친 유제원, 모친 윤희순을 따라 만주로 건너갔다. 1915년에는 선대의 독립정신과 그 유지를 이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일선에 나섰다. 마침내 음성국, 음성진 등 180여 명의 동지를 얻어서 조선독립단 또는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홍익단과 합세하여 왜적을 치기로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일제의 앞잡이에게 기밀이 누설되어 일제의 급습으로 실패하였다. 이에 피신한 그는 효준 또는 효남으로 이름을 바꾸어 가며 다시 독립투쟁의 계획을 세웠다. 그 후 독립군 양성이 절실함을 깨닫고 학교를 세우고 민족정신 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한 군사훈련에 전력을 기울였다. 1928년에는 귀국하여 강원도 춘천, 충북 진천 등지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하며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여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1931년 다시 만주로 건너가 무순에서 독립단을 재조직하여 활동, 1935년 청년단들을 교육하던 중 일제의 급습으로 피체되어 모진 고문 끝에 동년 7월 19일 42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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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경(徐相庚) 1900.08.22~1962.12.07 / 문화운동 / 건국훈장 애국장
청주농업학교 재학중에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격문 300매를 등사하여 배포하다가 3월 1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공명하고 1923년 9월 1일 일본 동경에서 박열 등 기타 동지들과 함께 불령사를 조직했으며, 흑도회에 가입하여 잡지 [흑도]의 발행에 참여하였다. 귀국 후 1925년 1월에 충주에서, 서정기 등 3명의 동지와 회합하고, 서울에서 무정부주의 독립운동단체인 흑기연맹을 조직하여 무정부주의 연구와 선전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5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9년 2월 18일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읍내리 금성여관에서 권오순.안동규.김학원.정진복.서정기.김현국 등 동지들과 함께 문예운동사라는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잡지 [문예운동]을 간행하려고 활동하다가 또다시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1930년 3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햇으나, 1930년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