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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이곳은 4·3사건 당시 군인들에 의해 의귀초등학교 동녘 밭에서 학살당한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안장된 곳이다. 당시 학살당한 주민 80여명의 시신은 흙만 대충 덮인 채 방치되었다가 '현의합장묘 옛터'에 매장되었으며, 2003년 9월 20일 지금의 묘역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유족들은 1964년 '삼묘동친회'를 조직하여 봉분을 단장하고 산담을 쌓아 해마다 벌초와 제례를 봉행했다. 1983년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를 담아 '현의합장묘' 묘비를 세웠으며, 유족회의 명칭도 '현의합장묘 4·3유족회'로 변경했다. 2003년 이후 해마다 음력 8월 24일에 이곳에서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영문] Hyeonuihapjangmyo The mass grave Hyeonuihapjangmyo is where the corpses of the victims were moved and buried again for the last time on September 20, 2003 after being long neglected with a sheet of dirt covering them in the field east of Uigwi Elementary School. The 80 victims were massacred by soldiers, stationed in the school building, at the time of the Jeju 4·3 Incident. Families of the victims organized "Sammyodongchinhoe" or the Three Graves Relatives Committee in 1964 to build burial mounds and rock walls around the graves. The committee has tidied up the graves and performed ancestral rituals every year. The committee erected a tombstone at Hyeonuihapjangmyo, and the title of the bereaved family association was changed to "Hyeonuihapjangmyo 4·3 Bereaved Family Association." Since 2003, a memorial service has been carried out here annually on August 24 of the lunar calendar. 안내판 설명2 [한글] 현의합장묘 내력 전대미문의 비극 ‘4·3’은 기어이 이곳 한라산 남동쪽 자락에도 피바람을 몰고 왔다 . 의귀리 약 300명, 수망리 100여 명, 한남리 100여 명 등 수많은 인명이 사태 중에 희생되었고,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80여 명의 주민이 한꺼번에 학살되는 참사까지 발생했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다. 의구·수망·한남리에 대한 초토화작전은 다른 지역보다 열흘 쯤 앞선 1948년 11월 7일부터 시작되었다. 토벌대는 이곳 중산간 지역에 집집마다 불을 지르면서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순식간에 삶터를 잃은 주민들은 불타버린 집주변과 돌담 밑에서 기거하거나 산으로 숨어들었다. 당시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2연대 1대대 2중대는 수색 중에 발견되는 사람들은 마구 죽이는가 하면 일부는 학교 안에 임시로 수용했다. 토벌대는 수용된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고문을 가할 뿐만 아니라 학살도 일삼았다. 이에 무장대는 이들 주민의 안위를 도모함과 동시에 토벌대를 무력화시키는 위해 1949년 1월 10일(음력 1948년 12월 12일 새벽 의귀국민학교를 습격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미리 간파한 토벌대의 화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