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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飯是國恩(일반시국은) ○○朴源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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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朴源根) 이명 朴赤雲 1912-12-08 ~ 1950-07-07
1930년 3월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를 자퇴한 후 인쇄업에 종사하면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친구의 감화를 받아 사회주의사상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박원근은 1929년경 6월 경성부(京城府) 필운동(弼雲洞) 김영학(金榮鶴)의 집에서 손경준(孫敬俊) 등과 함께 사상연구의 비밀결사 진화회(進化會)를 조직하였다. 회장에 손경준을 선출하고 각 부서의 담당자를 정하고 회지 ‘진화(進化)’의 발행을 결정하였다. 이후 ‘진화’를 발행하여 회원 간에 회람하면서 사상연구에 힘썼다. 1931년 6월 사직공원(社稷公園)에서 비밀회의를 개최하여 사회주의의 실천을 위해 사회주의 선전의 3대 강령을 세우고 회명(會名)을 삼인회(三仁會)로 고치기로 결정하였다. 그 책임자로 김영학을 선임하고 사회주의 선전의 실행 방법으로 동회의 회지(會誌) ‘삼인(三仁)’을 발행하기로 하였다. 이후 회명을 다시 신로회(新路會)로 고치고 회지 ‘신로(新路)’를 발행하였다. 이들은 회지의 발행을 통해 회원의 의식 교양을 높이고 조직의 확대 강화에 노력하였다. 박원근은 이 회지에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글을 수차례 투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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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된 박원근은 1934년 11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1933년 8월경부터 1934년 봄까지 그곳에 있던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 이건호(李健鎬)로부터 사회주의 이론 및 실천방법에 대해 지도를 받았다. 출옥 후 이건호와 관계를 맺으며 사회운동에 전념하였다.
박원근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박철원(朴哲元)을 지도하여 동지 이석태(李錫台)·이동우(李東雨) 등과 함께 대전(大田), 금산(錦山)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일경에 다시 체포되었다. 그는 1941년 10월 2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부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