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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왜군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해월신사(崔時亨:최시형)의 명교에 따라 영.호 대접주(金仁培:김인배)의 지원으로 하동부를 점령하고 곤양 등 경남 서.남부 일대를 장악하였다. 11월 7일 안심리와 상평에서 동학군은 왜군과 교전하자 백곡 수곡 등지에 집결한 동학군의 주력은 왜군을 격퇴하기 위해 옥종면 북방리 앞들과 이곳 고성산으로 포진하였고 11월 11일(음 10월 14일) 아침에 동학군은 왜군만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그들의 신무기 앞에 희생되어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말았다. 그후 여장협(余章協)이 이끄는 일부 동학군은 하동섬 진나루와 갈마치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으나 실패함으로써 이 고장 경남 서.남부지역에서도 수많은 동학군이 순도하였으며 전국에서 300만이 동원되어 30만명이 희생당하였다. 비록 왜군의 침략으로 혁명군의 항전은 멈추었으나 반침략 민족자주와 자립을 위한 동학혁명 정신은 기미 3.1독립운동 정신으로 승화되어 8.15광복을 맞게 된 것이다. 앞으로 민족통일의 대업도 이 숭고한 동학혁명정신 선양에서만이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 후학들은 순도순국하신 영령들께 진혼의 치성을 올리고 아울러 유족들에게는 위로를 드리며 앞으로 우리 천도교의 오만년 대운이 더욱 융창할 것을 심고드리면서 이 탑을 세운다.
글 지은이 정암 고정훈 포덕 135년(1994년) 11월 11일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 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