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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교선 선생의 본관은 경주요 신라 효공대왕의 52대손이시다. 1892년 6월 6일 충청남도 천원군 병천면 용두리에서 순원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시다.
7세때 수신면 발산리로 이사하시여 목천 진명학교를 마치신후 농사에 종사하시다. 한일합방이 되자 울분을 참지못하여 우국동지들을 규합 구국운동에 헌신하시던중 1919년 자주독립을 위하여 박영학 이순구 이백하 동지들과 애국단을 조직 3월 1일 아우내장터로 집결토록하여 청주 진천 천안 등지에 연락한뒤 선생은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조인원 김상철 동지들과 합세하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이어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병천 일본 헌병 분견소의 전화선을 절단하고 청사를 파괴하시다가 현장에서 왜병에게 검거되어 당시 경성 복심법원의 심판으로 공주감옥에서 2년여의 옥고를 겪으시고 출혹후에도 그 여독으로 3년동안을 고생하시었으며 서기 1986년 4월 9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하시니 부인 백남익여사와의 사이에 4남5녀를 두시었다.
1986년 3월 1일 독립운동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바 있으며 선생의 애국충절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위하여 이 추모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