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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강원도 양양지역 3 · 1운동의 전개 29 연과 김학구 등 주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수없이 다쳤다. 시위의 불길은 도천면(현 재의 속초)과 강현면으로 옮겨붙었다. 구 장들과 종교인들은 치밀하게 연락망을 가 동해 태극기를 만들고 주민 참여를 이끌어 냈다. 3·1독립운동이 양양 전 지역으로 퍼져나 가다 양양 각 지역에서도 농민들이 본격적으 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물치 장터에는 강 현면민 1,0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열고 대형 태극기를 휘날렸다. 강현면사 무소를 점령했을 때 면장과 직원들은 달 아났으나, 홀로 남은 서기 김남훈은 군중 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물치에서 시위를 마친 군중은 대포리로 몰려가 도천면 주 민들과 합세했다. 기세에 눌린 일본인 주 재소장은 군중 앞에 연거푸 절을 하며 굴 복을 약속할 정도였다. 강현면과 도천면 주민 1,300여 명은 양 양 입구 연창에서 가로막는 일본군 1개 소 대를 과감하게 밀어내고 경찰서 앞까지 진격했다. 주민들은 “이동혁 군수를 잡아내라”, “일제는 물러가 라”고 외치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당황한 경찰서장 은 “곧 물러갈 터이니 만세만 부르고 돌아가 달라”며 애원했다. 평화적인 시위를 마친 군중은 저녁 무렵 해산했으나, 이는 일제가 대규모 검거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술책이었다. 한편, 학생들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양양보통 학교 4학년 학생 10명은 김억준과 이창식의 주도 로 군향리 뒷산에 올랐다. 이들은 머리에 삼베천을 두 르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어린 나이에도 조국 독립의 의지를 보였다. 같은 날 6일, 손양면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 다. 상왕도리 김종택을 중심으로 여러 마을 이장들 이 주민 300여 명을 이끌고 양양읍내로 향했다. 시 위 행렬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맨 앞에는 대형 태극 1930년대 양양 장날풍경(출처: 강원도독립운동 사적지) 양양 3 · 1운동의 현장인 대포항 전경(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