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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함경도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적 의의 29 채보상취지서를 발표하고 함경남북도 각 군에 의무 금을 모집하려고 회관 내에 사무소를 정하였다. 이는 지역사회와 소통을 통하여 함경인들의 자발적인 참 여를 유도하려는 일환이었다. 한편 고종(광무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 등 사회적인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의연금 모금 열기는 갑작스럽게 식어가는 분 위기가 되었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을 맞았다. 국채보상함경남북도총회소 조직과 취지서 발표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려는 일환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임원진은 소장 오상규, 총무 현승 규(玄昇奎), 조사원 장봉주(張鳳周) · 김연형(金溎 炯) · 전 홍서(全泓序) · 주우(朱瑀), 서기 박봉헌(朴鳳憲) · 김하염 (金河琰) 등이었다. 거창한 슬로건이나 구호가 아니 었다. 2천만 동포가 3개월 자발적으로 단연하여 국 채 1,300만 원을 갚자는 ‘명쾌한’ 논리였다. 오상규와 동지들은 국민적인 열기를 확산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일진회(一進會) 를 비롯한 친일세력의 발호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에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계몽론자들 이 일제의 탄압과 방해 책동에 의해 민족운동전선에 서 급속히 일탈하기도 했다. 이는 계몽운동을 이끌 던 괴정(槐庭) 오상규 등 계몽운동 인사들에게 새로 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주었다. 계몽운동기 대표적 언론인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왼쪽)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 구소 책임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선인역사문화원 연구소장,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교육운동』(한국독립운동의 역 사 35), 『김광제, 나랏빚 청산이 독립국가 건설이다』, 『최용신 평전』, 『상산 김도연평전』 등 다수가 있다. 필자 김형목 국채보상단연회(國債報償斷煙會) 의연금 모금장부(이상 경북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