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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니름 부르는 학생은 빨리 방송국으루 오라우! 이○규! 남○자! 차 ○자! 이○원! 남○인!” 잠시쉬었던최수위가다시한번외쳤다. “지금부터내가…방송국으루오라우! 이○규! 남○자! 차○자! 이○원! 남○인!” 얼마 후 가이들이 모두 방송국에 나타났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보아도 방송의 위력 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방송을 들은 수많은 경희대 학생들은 아마도“이게 도대체김일성의소리냐? 도깨비의소리냐?”했을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여섯 가이들이 음악과 간단한 교내 소식을 방송하다가 1학기가 지 나가고, 방학이되니VOU도조용해졌다. 그러나FM과단파방송을위한공사는계속되고있던중혜성과같이나타난한사 나이가 있었으니 해병대를 갓 제대하고 2학기 개학과 동시에 복학을 하기로 한 사나 이, 이름하여유성화였다. 그것이 1965년 8월초다. 그 양반의 특별 채용(?)으로 방송 요원의 자격을 얻은 유 성화는 방학 동안에도 매일같이 출근(?)하여 뭣 빠지게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콘솔 및 송신기를 비롯한 각종 기재를 제작하고 있던 (그 당시는 완제품 구입은 불가능하고 모 든 기재를 직접 제작해야만 했다) 혓바닥에 매독 걸린 기술자 김아무개씨를 도와서 참으 로많은일을한사람이바로유성화다. 그러던 중 개학이 임박한 8월 말, 또 하나의 혜성과 같이 나타난 사나이, 그가 바로 나다. 이제 개학과 동시에 FM 및 단파 방송의 개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기재가 아직 완성되지않았다. 순전히모금에의하여공사비를충당하기로하였는데, 모금실적이 부진하여 학교에서 대금 지불이 안 되었다. 그러자‘혓바닥에 매독 걸린 기술자’가 기 재제작을중단한것이다. 급하기는 하고 기재는 완성 안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유성화와 나는 용두동에 있는 ‘혓바닥에 매독 걸린 기술자’의 가게(전파사)에 가서 할머니 혼자 집을 보고 있는 사이 에만들다말고놔둔콘솔을등에업고학교로발걸음을재촉하였다. VOU 야사野史 | 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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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U야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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