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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19년 보성중학 3학년으로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반도목탁지(半島木鐸誌)사건으로 6개월간 투옥되었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3년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1925년에 미국 오하이오주 웰스리언대학을 거쳐, 1927년 컬럼비아대학 정치사회학부를 수료하였다. 그는 컬럼비아대학 재학시절부터 항일사상의 소유자로서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귀국 후 전라남도 벌교읍에서 남선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으며 1935년에는 송명학교(松明學校)를 설립하여 교장을 지냈다. 1936년에는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비밀 후원회를 조직하여 거액의 재정지원을 하였으며, 1942년 10월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조선어학회사건은 일제가 한국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운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그는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으며, 약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