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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東倡義大將 閔肯鎬 記念像(관동창의대장 민긍호 기념상) 민긍호 의병장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1865년 아버지 민치봉(閔致鳳)과 어머니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7년 33세의 나이로 원주진위대 고성분견대에 입대하여 1901년 특무정교로 승진한 민긍호는 인품이 강직하고 공사가 분명하여 부하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지도력이 탁월하여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일제가 원주진위대를 해산하려하자 원주의 장날인 1907년 8월 5일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원주진위대의 무기고를 부수고 1,600여정의 소총과 탄약을 꺼내어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읍민들을 규합하여 1,000여명의 병력으로 4개 부대를 편성하여 원주 우편취급소와 일본경찰을 습격하고 원주읍을 장악하였다. 그 후 의병 부대를 많은 소단위 부대로 재편하여 제천·죽산·장호원·여주·홍천 등지에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이다가 1908년 2월 29일 치악산 강림전투에서 체포되어 4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민긍호 의병장이 거느린 의병 부대는 단위 부대로서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투력이 강했으며 모두 1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민긍호 의병상의 활약은 일본에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한 근대민족운동의 횃불이 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에 원주시는 이곳에 기념상을 건립하여 그의 훌륭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1999. 10. 17. (음 9. 9.) 원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