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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 광산김씨 기적비 옛적에 열행을 말하는 것은 오직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죽는 것이 였다고 하나 그것 또한 어려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건대 한 시대를 살면서 그 시대에 맞게 올바르게 일생을 사는것이 오히려 바른 일이 될 것이다. 대개 슬픔을 이기고 아픔을 견디며 한 평생 의를 지키며 위로 시부모님를 봉양하고 아래로 남편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것이 이 또한 더욱 어려운 것이다. 영남 의령 화정 덕교마을에 유인김씨가 자못 그 사람이다. 살펴보건대 김씨의 관행은 광산이요 도남공 휘 지 의 후손 맹현의 따님이요 어머님은 함양 오씨이다. 조선 헌종조 병진년에 진주 대곡 와룡리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사랑하고 섬기는 정성을 알았고 나이 십육세에 처사 박래원에게 시집왔다. 박시의 관행은 밀양이요 국당공 휘 언인의 후손 상호의 아드님이시다. 집안이 심히 가난한데다 해마다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가 더욱 어려운지라. 유인은 이런일 저런일 가리지 않고 일에 따라 정성껏 힘을 다 하였으며 몇 년이 흘러 임오년에 남편이 추위에 급한 병환이 나서 고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때 그때 유인의 나이가 이십칠세라. 하늘을 우러러 통곡 한지라. 곧 시부모님의 말씀이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것이 열녀라 하였건만 내 가정의 늙은이와 이런 것이 너희 보살핌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 네가 죽으면 어린 것은 누가 양육하며 늙은 내가 누구를 의지하겠는고 하시매 그때 아들 기하의 나이 겨우 삼세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우는 것을 마차볼 수 없는지라 유인이 번연히 돌이켜 각오하여 모질게 스스로 위로하여 무릇 자신의 처지를 현실로 받아들여 남편이 상을 치르며 아침 저녁 상석에 슬픔과 공경을 드리고 이후에 가정 모든일에 스스로 살림살이를 다 책임지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서 살림살이를 잘 다스리고 일찍 시동생 래준에게 말씀해서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고 게으름없이 우리 가정을 돌봐주기를 간청하기도 하였다. 내가 차마 죽지못한 것은 비단 시부모님과 자식뿐 아니고 또한 시동생께서 위로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시동생께서 늘 큰 형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고 또한 사사로이 재산을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