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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정용득 열사 추모비
관리번호 : 41-1-18 / 관리자 : 정타관(손자)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알프스리 200
정용득 열사는 1885년 7월 28일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56번지에서 동래 정씨 29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25세 되던 1910년에 우리나라는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하였고 이에 비분강개하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 나라 잃은 슬픔에 죽음을 무릅쓰고 자주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언양만세운동의 주도자들과 거사를 도모하고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었다. 언양 장날인 1919년 4월 2일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우렁차게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던 중 일본군경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시위군중은 해산되었으나 주동자로 정용득 등 6명은 일본군경에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그 후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형의 언도를 받고 태형 90대를 집행당하였다. 수감 당시 왜경의 혹독한 고문 및 그 후유증으로 7여 년간 병고를 치르다 조국광복의 영광도 보지 못하고 1927년 11월 29일 42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고인의 업적을 인정하여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오늘날 영광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후손들은 열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충정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