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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선생 지도하에 안재영 외 수십 동지들과 규합하여 의거 준비를 엄밀히 진행하였다. 동년 음 2월 18일 함안읍 시일을 기하여 2천여 군중들이 물밀듯 몰려와서 군청 앞 태평루 위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니 외치는 소리 산천을 진동하였다. 의거 군중이 합세하여 각 관공서를 점거하며 기물을 파괴하고 수감 동지 구출을 감행하였는데 돌연 내습한 왜병의 무차별 발포로 인하여 무수한 희생 및 부상자를 내었다. 공은 60여 동지와 함께 현장에서 체포되어 2년의 선고를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공은 시종의지를 굴하지 않고 출옥 후에도 향리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원통하게도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0년 6월 1일 별세하였다. 공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남은 원대요 손은 근주 근욱이다. 위훈에 보답하는 애국지사 표창이 1977년에 추서되고 이번에 나라 위한 충절의 일단을 청석에 새기게 되니 거룩한 행적이 길이 길이 빛날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