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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하기 위해 군자금 모집 무기 구입 등을 적극 추진하다 정사 1917에 박상진과 같이 영남일대를 담당하여 첫재 부역불순자를 처단하고 그 대문 위에 일유광복은 천인시부하니 성차대죄하야 경아동포라 특서하시곤 했다. 무오 1918에 광복회사건을 왜경에 밀고한 자 있어 의사는 국내활동의 어려움을 깨닫고 상해로 망명을 결정하여 목포에서 대선 중 불행히 피체되시여 공주 및 서대문옥에서 수년간 혹독한 고액에도 불굴하시다가 신유 1921 7월 7일에 김경태 임세규 등과 같이 마침내 악형으로 순국하시니 아 거룩하시다. 의사는 초야한사로서 성취이둔은 교사하지 않으시고 오직 천경지의인 민족정기에 입각하여 혈맹고천하고 두사기족하여 먼저 창귀의 혼을 빼서 희적의 투지를 고취하고 풍찬노숙에 강?간피함에 적사가 집중되자 ?신해외하야 권토중래를 꾀하시다가 졸리화망하여 연옥설교에 매불절구하고 부시금혈에 계칙자질하시며 종용순신하시였도다. 을유 1945의 조국광복에 따라 국민훈장을 받으섰고 위해는 배위 고씨와 함께 동작동 선열묘지에 봉안하였다. 의사의 휘는 기중 자는 극오 호는 소몽 성은 채씨오 관은 인천이니 다의당빈재양 선생의 후예이시다. 의사의 족증손 인식 및 종손 석윤이 의사 질 명현 청을 받고 족내 현계씨의 힘을 얻어 압로정변에 비를 세우고 유고 및 위장시문을 인포하다. 의사의 정충고절을 무궁한 장래에 빛어주기 위해 목포금한시 2수를 색여둠 기시왈 木浦今日事(목포금일사) 痛哭仰看天(통곡앙간천) 擊欄還一笑(격난환일소) 白日復照然(백일복조연)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