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page
283page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개화파 두 사람의 글씨
대표적인 개화파 인물인 박영효(朴泳孝, 1861~1939)와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의 글씨로 만든 병풍이다. 김가진의 글씨는 그가 73세에 쓴 것으로, 대나무와 계수나무가 있는 고요한 공간에서 차 끓는 소리를 듣는 정취를 읊은 원나라 시인 마진(馬臻)의 「죽창(竹窓)」을 옮겨 쓴 것이다. 박영효의 글씨는 봄날 빈 뜰에 저절로 돋아난 풀과 깊은 골짜기를 울리는 비바람을 노래한 시이다.
두 사람은 모두 한학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근대적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박영효는 갑신정변을 주도하고 갑오개혁에 참여했으며, 김가진은 군국기무처 회의원으로 갑오개혁에 참여한 뒤 농상공부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지냈다. 그러나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박영효는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과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등을 지내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하였다. 반면 김가진은 일제가 수여한 남작 작위를 반납하고 대동단을 이끌었으며, 상하이로 망명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