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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9일의 밤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항쟁 진압 출동을 거부하며 봉기했다. 2천여명의 병력을 규합한 봉기군은 '남북통일, 친일반역자 세력타도, 동족학살반대'등을 주장하며 여수 읍내를 점령하였다. 정부수립 전후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져 고통이 컸던 주민과 학생, 지역의 좌익세력이 합세하면서, 봉기군들은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등 전남 동부지역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이에 정부는 광주에 토벌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10월23일에 순천을, 27일에는 여수를 차례로 진압하였다. 진압군경과 우익세력들은 봉기군에 가담하거나 협력했던 사람들을 '손가락총'으로 찾아내는등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봉기에서 한국전쟁까지 항쟁과 토벌이 이어지는 동안 '여순사건'과 관련된 희생자는 군경과 민간인등 모두 1만여명에 이른다.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계기로 반공독재국가 체제를 강화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하하였으며, 희생자 가족들은 '연좌제'에 묶여서 이루고 싶은 꿈을 접고 힘겹게 세상을 살아야 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하나 된 조국과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다가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세웠던 위령탑옆에 사건의 개요를 담은 돌비를 희생자 유족의 성금을 모아 세우는 바이다. 2008.10.19 사단법인 여순사건 순천 유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