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page
280page
나비야 가자
- 평택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부쳐 -
임봄 / 시인. 문학평론가
나비야 가자
굽이굽이 산골짜기 내 어머니 품
산 너머 울음도 품어 안는 그곳으로
나비야 어서 가자
울면서 떠나온 아득히 먼 고향집
열여섯 찢긴 살들을 품어 안는 그곳으로
제국의 군화 발에 차이고 짓밟혀
꽃봉오리 마디마디 피 흐를 때마다
두 주먹 움켜쥐고 목메어 부르던 어머니.
푸른 멍이 흰 눈 아래로 가라앉던 그 밤에
봄날 아지랑이 꿈꾸며 울던
옆방 단발머리 순이도 죽고
나비야, 나비야, 하얀 나비야
살아남은 순이가 부르는 자장가
두 눈을 부릅뜨고 부르는 노래
언덕 너머 작은 오솔길 어귀에서
오갈 곳 없이 떠도는 하얀 나비야
거친 가시밭 맨발이라도 이제는 가자
곱디 고운 딸을 떠나보낸 그 저녁부터
넋을 잃고 혼절해 있을 나의 땅,
내 어머니 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