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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6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1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③ 업생들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기독교계의 움직임은 양양감리교회 청년들을 중 심으로 시작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조영순 전도 사의 딸이자 개성 호수돈여학교 학생이었던 조화벽 (1895∼1975)이 마련했다. 그녀는 학교 시위에 참 여한 뒤 독립선언서를 숨겨 3월 말 양양으로 돌아왔 다. 대포항에서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검문을 받아 소 지품을 다 빼앗겼지만, 독립선언서만은 들키지 않았 다. 이 선언서는 곧장 교회 청년 김필선에게 전달되 어 거사의 불씨가 되었다. 양양 장날에 울려퍼진 만세운동, 함홍기의 피살로 새 국면 한편, 양양면사무소에서 일하던 김필선은 동료 청 년들과 함께 1919년 4월 4일 양양 장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그는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사용해 태극 기를 찍어냈고, 이후 유교계 지도자인 최인식을 찾아 가 힘을 합쳤다. 두 세력은 임천리를 본거지로 삼고 마을마다 책임자를 정해 치밀하게 준비했 다. 도중에 양양군수와 일본 경찰의 급습 으로 태극기 374매를 압수당하는 위기도 겪었지만, 이들은 장소를 옮겨 밤을 새워 가며 다시 태극기를 만들었다. 주동자들이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마을별 조직망 덕분 에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4월 4일 운명의 장날, 양양은 사방에서 몰려든 군중으로 가득 찼다. 서쪽은 최인 식·이종태가 이끄는 거마리·임천리 주민 들과 박춘실·노용수가 이끄는 서면 주민들 이 경찰 대치선을 뚫고 진입했다. 북쪽은 이관진·이원도·이원희 삼부자의 지도를 받은 감곡리 주민, 동쪽은 낙산사 쪽에서 조산리·사천리 주민들이 합류했고, 남쪽은 손양면과 서면 용천리 주민들이 대 형 태극기를 앞세워 장터로 모여들었다. 오전 11시 경, 양양 장터는 수천 명의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 뤘다. 최인식의 선창에 맞춰 일제히 터져 나온 “대한 독립만세” 소리는 양양 하늘을 뒤덮었다. 기세에 눌 린 양양군수와 경찰서장은 도망쳤고, 일본 경찰들은 경찰서 안으로 숨어버릴 만큼 그 기세가 대단했다. 양양 장터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인근 농 민들은 일손을 놓고 마을 회의를 소집해 장터로 달려 갔다. 어느덧 군중은 4,000명을 넘어섰고, 양양경찰 서와 군청 주변은 인파로 가득 찼다. 지도자들은 체 포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일본 관헌은 물러가라고 요 구했다. 그러나 협상 도중 가평리 구장 함홍기가 경 찰서 안에서 피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분노한 군중 은 돌과 몽둥이를 들고 경찰서와 군청을 습격했다. 밤이 되자 일본 경찰은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권병 양양군에서 3·1운동 주역인 양양 출신 조화벽(1895∼1975)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3년 12월에 평생학습관 공원 사업지에 세운 기념 동상(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