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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5년 9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중국 관내 항일무장조직 조선의용대의 재조명’ 조선의용대는 한국혁명과 중국혁명의 불가분성을 인식하고 활동하였다. 1939년 김원봉은 일본군이 중국·만주(중국 동북지방)에서 건재한 상황에서의 국내 진공은 ‘조선혁명’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하고, 설령 일본군을 국내에서 구축하더라도 일본 본토의 군국주의 정권이 존속하는 한 중국 재침략은 불가피 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조선 의용대의 전략목표는 중국 및 한 반도의 일본군 격멸을 넘어 일본 본토의 군국주의 체제를 근본적 으로 붕괴시키는 데 있었다. 김원봉은 이 과정을 “몇 년, 심 지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고통스럽고 거대한 해방전쟁”으 로 규정하며, 이를 위해 중일전쟁 을 정규군 확충과 군사 준비의 시 기로 삼고, 중국군과 연합해 압록 강까지 진출하여 조국의 해방을 위한 장기적인 전쟁을 수행한다 는 구상을 제시하였다. 결국 조선 의용대 창설과 중국 항전 참가는 한·중 연합전선을 강화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총붕괴를 지향한 장 기 투쟁 전략의 일환이었다. 조선의용대 주력의 화북(華北)지 역 이동 조선의용대는 창설 직후인 1939년 중국의 화북·화중(華中)· 화남(華南) 각 지역에 분산 배치되 어 활동했다. 그러나 1940년 초반부터 부대 내부에 서는 활동 거점을 화북지역에 집중할 필요성이 본격 적으로 제기되었다. 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이후 화북지역에 새롭게 형성된 한인(韓人) 이주민 사회의 존재는 조선의용대가 이 지역에 주목하게 된 가장 주요한 요인이었다. 조선의용대 창립 기념 사진.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 창립 직후, 김원봉 등 간부 와 대원 전원이 한커우에서 함께 찍었다.  중국 언론 『今日中國(금일중국)』(제1권 제6기, 1939.12)에 소개된 대장 김원봉과 조 선의용대. 영어·중국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4개 국어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 최초 로 공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