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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병 참여 한훈은 1906년 청양 정산의 칠갑산에서 일본군과 항전하다가 전사한 외숙의 유언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형과 함께 홍주의병에 참여하였다. 한태석과 한훈 형제는 민종식이 1906년 청양의 합천전투에서 패한 후 부여의 지티에서 재기한 후에 합세한 것으로 보인다. 한훈의 <자필이력서>에 의하면 이때 의병의 수는 천 백여 명이었다고 한다. 홍주의병은 1906년 5얼 20일 홍주성을 점령하고 이어지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결사 항전하였으나 5월 31일 새벽부터 시작된 일본 정규군의 대규모 공격으로 패퇴하였다. 한훈은 홍주성 전투 후에는 민종식의 처남인 이용규와 곽한일 휘하에서 정산,보령,부여,노성, 연산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10월경 곽한일이 체포되자 한훈은 고향을 떠나 신도안으로 이자하였다. 이후 그는 신도안을 항일운동의 근거지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