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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4년 2월 경기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84년 한전부속병원 간호사로 입사하였다. ’87년 7,8,9 노동자 대 투쟁을 거치면서 이 땅의 소외 받던 노동자들 은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으나 한국전력노조는 3중 간 선제의 철옹성으로 어용을 유지하였다. 동지는 ’89년 한국전력 한일병원지부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어용노조 퇴진, 노조간부정년연장 무효와 등 한국전력노조 민주화에 앞장서왔다. 작지만 단아한 용모에 언제나 순박한 웃음을 띤 동지는 노동조합의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 서 헌신적으로 일해 나가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순리적으로 하나씩 문 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던 노동자였다. 어용노조 집행부는 ’96년 1월 7일‘규약위반’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사유를 내 걸고 징계위원회 개최와 출석을 통보하였다. 그리고 1월 12일 오후 2시경, 경주 보문단지내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전력노조 54차 중앙위원회 첫 번째 안건 으로 김시자 동지와 오경호 동지(광주전력지부 위원장) 2인에 대한 징계를 결의 할 예정이었다. 어용노조 집행부의 짜여진 각본대로 징계가 이루어지기 직전, 동지는 변론을 통해“징계는 부당하다”, “이런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이런 상태로 그냥 있 으면 노조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못 한다”는 말을 남긴 채 아무도 모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동지는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불덩어리가 되어 회 의장 안으로 뛰어 들어 부당함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였다. 분신 후 병원에 이 송하였으나 ’96년 1월 13일 새벽 3시 4분에 운명하였다. ‘전력노조가변해야만한전과한일병원이변한다는생각에서분신을결심하게됐다. 그동안 많은농성, 대회장점거등민주화를위해많은노력을기울였다. 항상그결과는최태일이하 고싶은대로했다. 같은위원장이, 선출된위원장인나를징계한다는것은위법이다. 그런데도 동조하는위원장들을보고가슴이매우아팠다. 이렇게할수밖에없었다. 전력노조가하루속 히변하기를바란다. 양심대로생활하는조합원은행동을보여주기바란다. 정리할시간이너 무짧았다. 노조는아무리법적이고, 상식적인이야기를해도통하지않았다. 가족특히어머님 한테내모습을보이고싶지않다. 가족모두에게죄송스러울따름이다.’ - 1996년1월12일유언- 김시자(당시35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1년 10월 8일 전북 김제 출생 1984년 2월 경기 간호전문대 졸업 1984년 3월 한전부속병원 입사 1989년 3월 전력노조 한일병원 지부위원장 피선 1993년 3월 위원장 재선 1996년 1월 13일 어용노조의 노동탄압에 항거하여 분신하여 운명 끝내살리라 |55| |5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