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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이 한 번 나고 죽음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일이로되, 한 생애 권력과 부귀를 누리고도 역사에 길이 비방과 모멸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일생을 고난과 역경 속에 해매이고서도 세세생생에 흠모와 존경을 받을 사람이 있나니, 여기 불멸의 혼으로서 계신 박상진 의사야 말로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분이시다. 의사는 휘는 상진이요 자는 기백이며 호는 고헌으로 서기 1884(고종 21)년 12월 7일에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에서 밀양 박씨 승지 시규와 여주 이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서 곧 백부인 홍문교리 시룡에게 출계하였다. 어려서부터 풍채와 기질이 당당하고 심성과 재기가 후덕총명하며 시문이 뛰어났는데, 경주시 외동읍 녹동으로 이사하여 성장하면서는 한문과 역사와 위인 열사의 사적을 즐겨 공부하였다. 그러나, 때가 일본을 비롯한 서양 외세가 몰아쳐 4천년 민족의 역사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니 어찌 뜻있는 지사가 우국충정을 품지 않으리오. 의사께서는 16세에 경북 선산의 유학자요 의병대장인 왕산 허위 선생의 문하에서 정치와 병법과 역사를 배웠으며, 22세에는 허왕산의 권유로 양정의숙에 입학하여 법률 경제 등 신학문을 익히셨다. 을사조약(1905)으로 국권이 송두리째 일본 통감부로 넘어가자 스승 허위가 일으킨 항일 의병활동에 당시 신문사 둘을 세울만한 거금 5만원을 제공하였고, 1908년에는 전국의병연합군의 군사장인 허왕산이 일경에 의해 체포 총살당하자 감히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던 스승의 시신을 찾아 그 고향인 선산군 임은으로 반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