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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24-31] 언더우드 가족(元杜尤 家族)
(Underwood Family
Underwood, Horace Grant(1850-1916)
Underwood. Lillias S. Horton(1051-1921)
Underwood, Horace Horton(1880-1951)
Underwood. Ethel Van Wagoner(1888-1949)
Underwood, Horace Grant Jr (1917-2004)
Underwood, Joan Vida Davidson(1915-1976)
Underwood, Gall Clarke(1955-2000)
언더우드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이다. 선교 초기 그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그는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절에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기독교 전파가 불법인 상 황에서도 언더우드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다. 언더우드는 8살 연상의 의료 선교사 릴리아스 호튼과 서울에서 결혼하였는데 이들은 신혼여행조차 전도여행으로 다녀왔다. 이들 신혼부부는 1600Km 이상을 여행하였고 600여명 이상을 치료하였다. 언더우드는 미국으로 돌아간 안식년 기간 중에도 강연과 신학교 방문 등을 통해서 에비슨 무어, 레이놀즈, 테이트, 리 등 후배 선교사들을 한국에 오게 했다.
언더우드는 초대 성경번역위원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위원장으로서의 그 책임을 다하 였다. 그는 영한사전, 한영사전 한국어문법서들을 직접 만들어 출판하기도 하였다. 또 언더우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를 설립했으며, '연희전문학교'(나중에 세브란스의 대와 합해져서 연세대학교가 됨)를 세우고 초대 학장을 맡는 등 한국대학교육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언더우드 2세(원안경)는 아버지를 이어 연희전문학교의 3대 교장으로 학교의 발전에 공헌하 있고, 언더우드 가문의 3세인 원일한과 원요한도 각각 연세대학교와 호남신학교에서 교육 선 교사로 봉직하였다.
양화진에는 언더우드 부부를 비롯해 원안경 부부, 원인한 부부 4대에 걸쳐 모두 7명이 안식 하고 있으며, 언더우드 가족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