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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인물로서 여의산 송계의 영구 존속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니 공들의 여의산에 남긴 발자취마다 산천초목은 조합과 더불어 영원히 무성하리라. 1910년 한일합병과 더불어 일제의 토지약탈 정책의 일환으로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무주공산 상태에 있던 송계 산판을 세부 측량과 함께 국유화의 온갖 압력과 회유도 있었지만 공들은 극력반대하시고 당시 시대 상황으로서는 문중 소유 또는 개인소유도 가능했지만 공들께서는 사심없이 선조들의 유지를 받들어 송계의 영구 전승을 위하여 1917년(정사) 11월 10일 송계 공동소유의 뜻이 담긴 이유 변명 증서를 작성 전계원에게 배포하고 소유임야의 경계와면적이 정확한 학산면 아암리 산 7의 1번지와 용화면 여의리 산 28번지의 등기부상 최초의 명의자를 공들로 등기하여 명실상부한 송계로 개편 계원들의 친목은 물론 채신조림과 임도보수 등 송계육성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1968년 2월 2일 여의산 송계를 여의산 산림조합으로 개편하면서 공들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고자 송덕비를 건립키로 한 여의산조합 창립총회의 결의를 이어받아 만시지탄이지만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서기 2002년 6월 근수 여의산 산림조합 조합장 박희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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