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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음날 뫂로 무안 나주 경찰서에서 동원된 무장경찰관 50명을 출동시켜 어제의 사태에 대하여 조사하겠다면서 200여명의 농민을 모아 놓고 폭행가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해도 아무도 나오지 않자 5~6명씩 조를 만들어 방에 있는 징수원들 앞에 한줄로 세운다음 폭행에 가담자를 대질하며 색출하고있던중 무장경찰관들이 농민들을 발로차고 총개머리판으로 구타하는 등 폭력행사를 거듭하는 것을 보고 우리 여기 있으면 모두 죽겠다면서 도망가는 농민이 50여명 붙잡아 그 중 주로 20대 청년들인 김혁곤 박권태 임창오 권오만 김응수 윤인수 김병술 임현욱 임경윤 김용빈 이희철 11명을 용의자로 검거하고 다른 농민들은 풀어주었다. 그들은 목포경찰서 유치장에 구속시킨후 구타와 고문 가혹행위등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범죄사실을 조작 기소하여 그해 12월 10일 목포지원 형사합의부 김용식 판사는 검사의 조작된 공소사실을 인용 모두 실형을 선고 집행하였다. 1623년 시작된 토지의 수난은 무려 323년동안 조선왕조 세도정치와 일제식민통치 미군정통치에 희생된 하의 3도민이 겪은 수난과 저항의 역사는 결코 잊혀지지않을것이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도민들이 겪은 수난과 고초에 비하면 초라한 사적비이지만 우리 하의3도민들은 단순한 소작쟁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따을 강탈한데 대한 순수 농민항쟁이었고 토지탈환운동으로 해변산중이라는 척박한 섬에서 살아가는 불굴의 정신으로 끝까지 투쟁한 결과 강탈한 땅을 되찾는 하의3도민들의 헌신과 저력을 위리는 기억한다. 특히 강은상 박충흠 김왕곤 김진동 김수길 고황권과 향우들의 정성을 모아 하의3도 7.7농민항쟁사적비에 그 숭고한 뜻을 담아 세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오림리 선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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